김동률/his stuff

SEE 9월호

아니뭘이런걸다- 2003. 4. 21. 15:56
그에게 전율하고 탐닉하다.
김.동.률

= 미국이라는 이방에 자신을 내던진 후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렸다. 정의되어지지 않은 독특한 보컬, 그리거 정감있는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김동률 식의 음악을 만들어낸 그. 이 땅에 그를 가두기 위해선 2년이란 시간을 더 허락해야 하지만 보석금 조를 들고 나온 그의 앨범에는 후의 화려한 귀향을 기다리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



가끔, 사람들은 자기의 외모를 불평하는 말을 한다. 신의 작품에, 피조물들이 성적표를 매기며 털어놓는 넋두리들, 어떻게 보면 창조자에 대한 반격쯤으로 들리기도 하고 모든 일에 변명만을 늘어놓는 나약한 인간들의 탄원들이 들리기도 한다.
대부분 그 불평들은 생을 마칠 때까지 영원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마감되곤 하는데 때로는 같은 피조물들이 들어도 말도 안되는 불평이 불거져 나오기도 한다. 남들은 다 이쁘다는 덧니가 싫다는니, 보조개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느니, 너무 말랐다느니..
들통에 담긴 시루떡 마냥 습기가 더위에 지쳐있던 오후, 긴 스웨터를 걸치고 온 그도 이 공식에 따라 자신에 대한 한 마디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말랐다고, 그래서 한 여름에도 이렇게 긴 팔 옷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그에게서는 병약한 소말리아 어린이의 모습이나, 남루한 부랑자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 지독하리만치 까만 먹물을 담고 눈망울과, 붓으로 그린 듯한 선홍색의 입술, 그리고 치자꽃 같이 흰 향기를 품은 긴 손가락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왠 푸념? 그런 모습들이 많은 여성들이 시신경을 후려치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는 것일까? 굳이 모성본능이라는 말을 달지 않더라도 말이다.
전람회에서 카니발로, 그리고 카니발에서 김동률로 진화한 그. 독특한 음색과 음악스타일로 음악 활동을 해오던 그가 1년 6개월전 모든 음악 활동을 접고 돌연 미국으로 건너갔었다. 그리고 새로운 앨범을 들고 귀국. 그가 미국이라는 이방에 자신을 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음악 공부가요. 제가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감만 가지고 음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지금 버클리에서 필름 스코어링(영화음악)을 전공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은 전공보다 교양과목을 배우고 있지만요."

18개월 동안의 문화 섭취를 끝내고 만들어낸 이번 앨범. 첫 곡을 "long distance relationship"에 관해 다룬'2년만에 '란 곡으로 장식한 걸 보면 무언가 심오한 뜻이 있을 법하다.
그는 한국에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온 유학생들이 헤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고 그 느낌을 살려서 곡을 썼다고 한다. 거리의 장벽을 이기지 못하고 지는 사랑. 시간이 지나 아무리 세대가 바뀐다 하더라도 계속 진리는 남아있는 "out of sight out of mind"류의 이야기들. 자신의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호탕한 웃음의 데시벨이 높아질수록 두터워지는 눈물 주머니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이번 앨범에는 그런 아픔에 관한 이야기를 2곡이나 담았다. '2년만에'는 R&B 스타일의 곡으로 김동률의 키보드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스트링 사운드가 잘 어울리는 곡이다.

'벽'은 같이 재학중인 양파양과 듀엣곡. 깔끔한 편곡 덕분에 두보컬의 특색이 살아났다. 먼 곳에 떨어져 있어 전화통화만으로 사랑을 감내해야 하는 여자의 흔들림과 남자의 안타까움을 묘사했고 그 느낌을 잘 전달해내었다. '벽'은 제가 좀 노래를 잘 못해요. R&B는 참 소화하기 힘든 장르인 것 같아요. 워낙 한국말이 R&B를 하기에 어려운 언어 같아요. 어감과 내용이 다 일치하는 가사를 써야하는데... 그리고 양파는 저와 노래하는 스타일도 다르구요. 양파는 노래를 잘 했어요. 본인은 맘에 안 들어 하지만.."
이번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의 건반작업을 김동률이 했다 알사탕을 두 볼에 가득 물고도 주머니의 사탕을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아이같은 욕심이야 아니겠지만 5살 때부터 길러온 피아노 실력을 한 곡 한곡에 다 쏟아 붓는 욕심을 부렸다. 특히 '편지'에서의 소울풀한 연주는 압권이라 할 정도.

앨범 편곡도 신해철과 김동률이 반반씩 했다. 신해철이 리듬을 찍고 나머지를 그가 입히는 방식이었다. 작업은 뉴욕에서 이루어졌는데 본인의 앨범작업 때문에 신해철이 시간이 많이 내주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타지에서 힘들게 만들어낸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당아주려고 한 느낌이 든다.
"음악이 달라졌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그런 소리를 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요. 불협화음처럼 들리셨다는 건 텐션이라는 건데 하모니가 어려워진 거죠. 사실 편성적으로 단순한 멜로디, 단순한 코드가 가장 좋은 곡이라고 하는데 요새 너무 넘치잖아요. 그런 음악은 표절만 안 하기에도 급급할 정도로 포화상태기 때문에 저같이 멜로디컬한 곡을 쓰는 사람에게는 힘든 것 같아요. 제가 표절에 민감하거든요. 요즘에는 어떤 분위기로 가느냐. 그걸로 승부를 하는 것 같아요. 외국은 멜로디 하나 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사운드의 컬러를 보고 유니크하다. 다르다 그러그든요"

'김동률이 만든 음악이다' 하면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게 좋은 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게 너무 오래가면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 그래서 이번엔 코드를 어렵게 한다든지 동양적인 색깔을 넣는다든지. 그런 작업을 더했다. 원래는 동양 적인 곡을 많이 넣으려고 했지만 외국에서 우리 소리를 녹음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한다. 서양악기로만 표현하기도 힘든 한계가 있었을 테고 외국인이 우리 리듬을 연주하는 게 그리 쉽지 않을테니깐. 하지만 그 장벽을 없애기 위해 외국인들에게 사물놀이를 들려주며 우리음악의 감을 전달하기도 했다.
보컬도 많이 달라진 듯하다. 싸하고 따뜻하게 감싸며 지르는 것 보다는 리듬감을 주려고 한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툭툭 끊어지는 느낌. 마치 리듬의 바람을 타는 느낌이라고 할까.
보컬을 따로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곡에 ㅁㅏㅊ춰서 불러야겠다는 생각에 충실하다 보니깐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겠다고 한다. 게다가 엔니지어도 외국인보다 보니까 아무리 가사를 잘 설명해줘도 한국어의 어감을 잘 못 잡아내기 때문이기도 한 듯싶다고...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서 총력을 기울였던 곡은 '희망'이다.
자기 자신을 많이 닮은 곡이라는 이 곡은 김동률의 피아노 연주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클래시컬한 사운드가 잘 어루러진 음악이다. 다소 쫓기는 듯, 이완과 긴장이 반복되는 리듬의 피아노에 어우러진 그의 보컬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팬들의 반응 중 가장 쇼킹하다고 하는 곡이 '님', 노후대책으로 "뽕짝뽕짝" 음악을 한 번 만들어 보았다고, 장난스러움을 더하기도 한다. '악몽'은 처음부터 음산하게 만들려고 했던 곡이다. 김동률의 음악을 알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쇼킹할 것 같은 스타일. 어떤 악몽에 시달린 것일까. 그의 분위기가 자못 음산하다.

" 뭐가 그렇게 악몽이였냐구요? 전 늘 우울해요. 성격이 됐죠. 낙천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울한 사람도 있고 .. 뭐 그런거죠."
노래하는 데 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김동률. 하지만 훗날에는 영화음악을 꼭 하고 싶다는 그에게서 침울에 빠진 상념이나 시니컬함 따위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웃을 때마다 자로 반듯하게 그어놓은 듯한 치아 만큼이나 강하고, 단련된 자아가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