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his stuff

'전람회' 서동욱씨의 글

아니뭘이런걸다- 2008. 1. 26. 22:07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서동욱씨는 엄청난 글빨의 소유자이다
작사는 몇 개 하지 않았지만..
하늘높이, 향수, 마중가던 길, 꿈속에서, 유서..
지금 기억나는 것은 이정도인데, 다른 곡 있나요? 빠진 곡 있으면 댓글 달아주삼

아래 글은 예전 동닷에 그의 공간이 있을 때의 글로 기억함
홈 개편되면서 공간이 사라져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그의 필력을 만나서 반갑구랴


정말 부업취미삼아 작사해도 참 괜찮았을텐데말이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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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06 여전히

여전히, ‘당신, 음악을 어떻게 그만두게 되었소’라고 물어오는 사람과 만나게 되곤 합니다. 나는 그럴 때면 늘 작게 웃고는, '마치 담배를 끊듯, 그렇게 그만두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내게 말을 건넸던 그 사람은 ‘아아, 그랬군’ 하고 떠나가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제게는 그때부터가 수많은 기억들, 한동안 다시 돌아보지 못했던 그 많은 추억들과 다시 한번 만나게 되는 시간입니다. 마치 잘 개켜져서, 낡은 옷장 안에 정돈되어 있던 겨울옷들처럼, 매일매일의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혀졌던 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닫힌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 기억들은 마음속에서 한껏 늘어놓아지고, 저는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시간여행에 잠시 빠져듭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이제 8년..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제게 일어났더군요. 그 많은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라든가, 혹은 전화벨 소리에, 꿈을 깨듯, 나는 다시 숨가쁘게 돌아가는 매일의 일상 속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001013 스무살

스무살. 1993년. 대학생.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신입생. 랄라라. 만세,만세. 정말 그랬습니다. 저의 대학 첫학기는 그렇게 신나게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이 다 내것인양,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좋더군요. 긴긴 고교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어른이 된 거구나, 나도 이제 다 컸구나, 그랬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4년의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내게 될른지 생각하면서 행복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학 생활이란 참 좋은 것이더군요. 여기서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대학의 우리 과에서 가르치고 싶다는 바램, 도서관에서 새운 밤들, 친구들과 마신 맥주와 피자, 맥주와 햄버거, 맥주와 맥주. 강의실에 놓인 낡은 의자, 손에 묻은 분필가루. 그런 것들이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밴드를 만들고 음악을 해오다 대학까지 같이 들어온 친구 동률이가 갑자기 대학가요제에 나가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타났을 때, 저는 학교 운동장에서 미식축구에 열중해있던 참이었습니다.


001020 미식축구

미식축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덩치도 자그마한데 어떻게 그런 운동을 하느냐’고 하지만, 미식축구에는 크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포지션이 많답니다. 저는 공격편의 맨 뒤에 섰다가 공을 들고 달리는 Tail Back입니다. 미식축구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아마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생각해보시면 비슷합니다. 달려라, 검프! 우리 대학의 미식축구팀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팀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시합에서 이긴 후에 모든 선수들이 모여서 벌이곤 하는 맥주 마시기 릴레이 시합을 여러분도 보셨다면, 어쩌면 모두 우리 팀에 들어오고 싶어지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시합에 졌다거나, 혹은 팀의 누가 큰 부상을 당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모두 마음이 어두워지지요. 미식축구는 아주 거친 운동이라서, 늘 크고 작은 부상이 뒤따르거든요. 동률이가 미식축구를 싫어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였습니다. 친구가 다치는 것도 문제지만, 베이스를 연주해야 하는 제가 손가락이라도 다치는 날엔 큰일이었지요. 우리 둘이 대학가요제의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도, 동률이는 혹시라도 제가 시합에서 다칠까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001029 자유세상
자유세상이던가 하는 쵸컬릿 광고에 나와서 한때 TV출연도 했던 ‘고성언’인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양반이 홍익대 미식축구부의 간판급 Quarter Back 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만, 동률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간 이 사람과의 시합에서 제가 왼쪽 어깨가 빠지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러진 채 실려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 없을 것입니다. 그날은 바로 대학가요제 예선 며칠 전이었답니다. 손가락 부러진 거야 그렇다고 하고, 저는 어깨가 빠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아픈 건지는 미처 몰랐더랬습니다. 의사들이 제 어깨를 다시 맞추어 넣는 동안, 나는 아아, 세상에, 자세히는 말씀 못드려도, 그날 저는 의사들한테 동물, 혹은 숫자와 연관되는 못된 말들을 많이도 했답니다, 하하. 그런데 더 큰 걱정은 대학가요제 예선이었습니다. 팔이 빠지면, 다시 끼워 넣더라도 그게 무슨 나사 끼워넣듯이 멀쩡해지는게 아니더군요. 석고로 대고, 붕대로 감고, 아주 꼼짝을 못하게 팔을 묶어놓아야 했답니다. 물론 오른쪽 새끼 손가락도 마찬가지였구요. 음, 큰일이군. 동률이에게 뭐라 말하나. 그렇게 기다려온 대학가요제의 꿈은 무참히도… 그런데 참 하늘이 무심하진 않았던 건지, 한번 베이스라는 악기를 생각해보실까요, 이 악기를 연주하는데 왼쪽 어깨와 오른쪽 새끼 손가락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만약 왼쪽 손가락이었든가 오른쪽 검지 쯤이었다면, 그러면 끝이었겠지요. 몸은 망가졌어도, 연주는 할 수 있다, 음, 그리 나쁘지만은 않군. 그래서 저는 행여나 제가 다쳤을까 걱정하고 있는 동률에게 전화를 걸어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거 먼저 들을래?’ 라고 물어봤답니다.


001126 온갖 난관 시리즈
온갖 난관 시리즈 라는 게 있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어떻게 불러볼 수 조차 없길래, 나름대로 고민 끝에 만들어 낸 이름입니다. 이게 뭐냐면, 이를테면 우리의 멋진 주인공이 등장해서 수많은 역경과 온갖 난관을 헤치고 끝내 성공하셔서 너무너무 부자가 된다거나, 혹은 완전 예쁜 아내를 얻게 된다거나, 뭐 하여튼 그런 구조의 영화나 소설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역경 딛고 성공하기’구조를 가졌다고 해서 언제나 ‘온갖 난관 시리즈'의 반열에 들 수 있는 건 물론 아닙니다. 그 위에 반드시 상당 수준의 촌스러움과, 놀랍도록 단조로운 내용 흐름 등이 필수적이지요. 더욱이, 진정한‘온갖 난관 시리즈’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 또 하나 있답니다. 그건 바로, 영화가 시작되고 5분이 지나기도 채 전에, 우리는 이미 너무너무 확실하게 ‘설마 저기 저 주인공, 앞으로 65분간 두개의 커다란 위기로 요약되는 온갖 난관을 겪고난 후, 마침내 마지막 5분 동안 극적인 성공으로 끝나시지는 않으시겠죠’ 라는 의심같은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아, 제발, 그래서는 안되셔요.. 그렇게 뻔한 스토리만은 제발…’ 이라고 기도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끝끝내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온데간데 없고, 감동적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폭발하는 배나 공장, 뭐 그런 배경으로 쏟아지는 총알을 뚫고,그것도 슬로우-비디오로 미녀를 구출해 나오는, 그런 어마어마 힘빠지는 엔딩 장면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또다시 이런 뻔한 스토리에 당했구나 라는 허탈감과 상실감에 지쳐쓰러진 우리의 바로 뒷줄 의자에서 말없이 오징어를 드시며 앉아계시던 한 사내가 갑자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 스크린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낸다는 점, 뭐 그렇게 이어지는 스토리, 그게 바로 온갖 난관 시리즈랍니다. 하하.


001211 베이스
베이스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참 많지만, 그 중에서 몇 개만 꼽아볼까요. 단아함. 솔직함. Straightforwardness. 경박스럽지 않고 차분함. Basic. Base. Bass. 그런 느낌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던 해, 열심히 모은 돈으로 베이스를 사러 갔더랬습니다. 몇시간을 고르고 골라서, 옛날부터 갖고 싶었던 나무 색깔이 나는 베이스를 사기로 결정을 했답니다. 그 커다란 상가에서 찾을 수 있는 두번째로 싼 악기였지만, 16만원이라는 돈, 이제는 어떨른지 몰라도, 그때 저에게는 마치 집도 살 수 있을 만큼 크게 느껴졌답니다. 악기를 들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저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중에 하나였을 겁니다. 그 싸구려 악기를 얼마나 닦고 아끼고 사랑했는지, 옆에서 본 친구들은 ‘너 베이스랑 사귀지’하고 농담을 할 정도였답니다. 그렇게 아꼈던 베이스였지만, 사실 엉터리로 만들어진 악기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엉터리 악기가 다 그렇듯, 한 서너곡 연주하고 난 후에는 악기가 전체적으로 앞으로 휘어지면서 음정이 틀려지는,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런 문제가 있었답니다. 그러나 별 수 있나요, 저의 사랑하는 악기인데. 그래서 저는 언제나 한 곡 한 곡이 끝날때마다 다시 음정을 맞추어 놓거나, 잠시라도 쉬는 시간에는 아예 줄을 다 풀어놓곤 했답니다. 93년 '꿈속에서'를 녹음하고 난 다음에, 녹음기사님이 웃으시며 ‘대한민국 음반 역사상 실제 녹음에 사용된 싸구려 악기 부문 신기록’이라고 농담을 하시더군요. 그 이후로는 몇백만원이 넘는 좋은 베이스를 몇 개나 가질 수 있었지만, 제 마음속에서 저의 첫 악기였던 그 낡은 베이스는 언제나 가장 사랑스런 악기로 남아있답니다.


010124 대방동
대방동 지하차도를 지나 남쪽으로 한 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그곳에는 아마 무척이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은 녹음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이름으로 바뀌어 어떤 음악이 녹음되고 있는지, 혹은 없어져 버렸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바로 그 곳에서 우리의 첫 앨범이 녹음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 곳을 좋아합니다. 그곳에서 동률이와 밤을 새워가며 열중하던 기억들, 그 때 우리의 가슴 속에 맴돌던 수많은 선율과, 단어 하나하나마다 마치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맞이하듯 정성을 다했던 가사들, 남들에게는 별 재미도 없는 기억일수도 있는 그 매일매일의 작고 사소한 기억들이 저에게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릅니다. ‘미스터 투’가 성공한 이유는 노래 앞에 종소리가 땡땡 들리기 때문이라며, ‘기억의 습작’ 전주에 종소리를 넣어보자던 아버지 김실장님, 별다른 반찬은 없어도 너무 맛있던 1층 식당집 아주머니의 수다스러운 목소리, 고등어 조림을 보고 ‘이게 뭐에요?’라고 묻는 사람을 향해 착한 표정으로 ‘뱀이야, 뱀’ 이라고 하던 오기사님. 아, 그러고 보니 바로 이 분, 오기사님은 정말 멋진 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으신 분인데, 당신 스스로는 자기가 재미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정말 꼭꼭 숨어있는 진주같은 분이었으니까요. 오죽하면 동률이와 저는 ‘오기사님 시리즈’ 를 하루하루 늘여가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했답니다. 그때 가장 유명했던 오기사님 시리즈로는 앞에 있는 ‘고등어 뱀’ 이외에도 ‘안먹으면 죽는 아로나민 골드’, ‘잠복대기 음성변조 깜짝쇼’, 등등 여러가지가 있었답니다. 보고 싶은 오기사님,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011106 일력
일력을 본지 너무 오래 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희 집 마루에도 일력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년 365일이 전부 커다란 숫자로 그려져 있는 그 일력을 매일 한장씩 떼어내는 일은 저만의 즐거운 특권이자 임무였답니다. 그 단순한 일을 왜 그리도 좋아했는지, 저는 하루에도 몇번씩 그 일력을 쳐다보면서, 아아, 왜 이렇게 하루가 긴 걸까, 빨리 내일이 와서 다시 한장을 떼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곤 했답니다. 그러다 일년이 다 지나가 버리고 마지막 남은 일력 한장을 떼어버리고 난 그 해의 마지막 날,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라 생각했던 전화번호부 보다도 두꺼웠던 그 일력이 어느새 다 사라져 버렸다는 걸 참 신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푸근한 추억을 담은 일력을 이젠 왜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요. 아마 이젠 세상을 살아가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져, 하루하루 떼어내야 하는 일력으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만한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인건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매년마다 지난 해의 달력을 떼어내고 새로운 한해의 달력을 바꾸어 다는 그 느낌이 이젠 그 옛날 제가 매일마다 떼어내던 그 일력의 속도와 비슷하게 느껴질 만큼, 그렇게 우린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어제 보니 올해 달력도 이젠 한장 밖에 안남았더군요. 올해 연말은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보고싶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천천히,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020527 그리움
그리움이란 얼마나 깊은 뜻을 가진 단어인지, 생각해 볼수록 놀라웁습니다. 때로 시린 가슴이 미어지도록 그리운 사람이 있어, 어느 깊은 밤 꿈속에 그를 본 그 기쁨과 설레임에 젖어 제발 잠에서 깨지 않기를 바래고 바랬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시는지요. 그 낡은 사진 한장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기억들이 하루하루 지나가는 일상들 속에서 점점 더 잊혀져 희미해지고, 문득 이젠 내가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날의 작은 현기증을 나는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한때 도저히 그 그리운 모습을 머리에서 떨쳐버릴 수 없어 힘들어 하였던 것을, 그후로 몇 년이 지나서는 행여 그의 기억이 잊혀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어제 문득 오래된 사전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그 낡은 사진을 바라보며, 아, 나는 이젠 더 이상 그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 놀라운 사실에, 나는 미처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거기 그대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현기증… 그것은 그리움이 가진 또다른 모습입니다 - 시린 가슴, 슬픈 설레임, 그리고 긴 한숨으로 내쉬어지는 깊은 아쉬움과 함께.


030910 출발
출발!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합니다.

좋아하는 일들을 열심히 할 수 있음에 기뻐하며,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네요.

여기는 건포도의 고향 - 놀랄 일도 아닙니다.
신이 건포도를 위한 땅을 만들었다면 여기가 아닐까요.

낮에는 찌를듯한 더위가 작렬하지만 사막처럼 건조한 탓에 땀이 날 새도 없고, 밤에는 또 어찌나 추운지 11월의 새벽녘이 생각납니다.

몇해전 11월의 어느 늦은 밤, 오랜 친구와 낚시를 갔더랬습니다.

흐르는 강물과 그 안에 드리워진 낚시줄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시린 손을 비비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었는지요.

그리고 새벽동이 터오며, 세상 모든 것이 파랗게 물들어가던 11월의 새벽 4시 반.

강가는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가득 차고, 그 새벽 물안개를 차고 오르는 잉어의 힘찬 시작, 그리고 그로 인해 곱게 흔들려 퍼져나가던 물안개.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티없이 맑은 새벽 강물.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지요. 이제 또다른 시작, 더 멀리 내딛는 힘찬 한걸음.

다시 태어난 오늘, 새로운 세상, 빛나는 아침에... 모든 것이 아름답기를.

CA